이미지들의 간극에서 파생된 가설을 필름(화폭)에 수렴하며, 해석의 지평을 넓히다.

라울 루이즈의 도둑맞은 그림에 관한 가설은 템플 기사단이 그랜드 마스터 채스 경기의 기념일에 매년 모여 벌인 변태적인 이교도 행위의 호흐들을 그리고 있다는 Pierre Klosskj의 소설The Baphomet에서의 영감이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서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가 도둑맞아 사라진 한 장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위해 가지고 있는 그림들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고 판단해 온 이미지를 차례차례 설명해 가며 자신이 결정지은 결론에 도달한 후 마무리 되는 영화다.

두 명의 나레이터가 그림들에 대한 연결고리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화면에 보이는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그림과 같은 모양으로 구색을 갖추고 있는 구도 사이로 걸어 들어가 평면 그림 사이를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림과 같은 배경에 사람들 사이를 거닐며 마치 그림의 구석 구석을 쓸어 내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과 좀더 당시의 숨결이 와 닿는 것 같다. 그리고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그림을 해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에 연극적인 요소가 포함이 되고 그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어떤 표현으로 하고자 하는 상징성을 부여하는지 같은 해설을 보는 것이 이채롭다.
 

* 라울 루이즈 Raoul Ruiz
1941년 7월 25일 칠레 푸에르토몬트에서 태어났다. 선장의 아들이었던 라울 루이즈는 대학에서 법학과 신학을 전공한다. 이때부터 연극무대에 올릴 희곡을 쓰곤 했던 그가 찍은 첫 번째 영화는 1960년에 만든 단편 <말레타>였다.
드디어 그는 1968년 첫 번째 장편영화로 완성된 <세 마리 슬픈 호랑이들>로 그 해 로카르노 영화제 금표범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칠레 내부뿐만 아니라 서방세계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으며, 이어지는 일련의 영화들은 정교한 알레고리와 독창적인 스타일로 남아메리카 영화의 새로운 미래라는 찬사를 받았다.
1972년에는 산티아고의 한 호텔에서 '고대 기사들의 협회'라는 작가 그룹을 창설, 일종의 살롱문화적 영감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1973년 칠레 최초의 좌파 정부 아옌데 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피노체트의 박해를 피해 올라야 했다. 이후 라울 루이즈의 모든 영화들은 일관된 알레고리를 가지고 '망명 작가'로서 그를 위치시키는 것이었다.
1974년 프랑스 망명 직후 만들어진 <망명자들의 대화>는 강제적으로 조국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의 아이러니를 특유의 초현실적 감성으로 그려냈다. 이후 파리를 거점으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떠돌며 길이와 매체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작업을 계속해나간 라울 루이즈는 1977년에는 영화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의 영화이론가 파스칼 보니체를 자신의 영화 <불안정한 직업>에 배우로 출연시키면서 교류하기 시작했다.
파스칼 보니체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도난 당한 그림에 대한 가설>(1978), '장 꼭도부터 펠리니를 거쳐 타프코프스키를 한데 합쳐놓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은 <선원의 세 개의 왕관>(1982),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년 모험소설로부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실제와 소설적 환상이 재구성된 <보물섬>(1986) 등은 이 시기의 주목할만한 작품들이다.
라울 루이즈의 행적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보다 자유분방해진다. 1990년 첫 번째 영어 영화 <황금배> 뉴욕에서 흑백 16밀리로 완성했고, 1997년에는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섀터드 이미지>를 완성했다. 자신의 개성을 확연히 드러내면서도 믿을 수 없이 방대한 양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라울 루이즈는 <두 어머니의 아들>(2000), <강한 영혼들>(2001), <그 날> 등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 리스트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